* 6월 22일 경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인쇄 일정에 따라 출간이 연기될 수도 있습니다.
베이루트가 무너지던 시간, 한 여성은 끝내 타자의 편에 남았다.
『시트 마리-로즈』는 레바논 내전 중 실제로 납치·살해된 여성 활동가 마리 로즈 불로스 사건을 바탕으로 에텔 아드난이 쓴 대표작이다. 1970년대 레바논의 종교 갈등과 민족주의, 식민주의의 잔재, 계급과 젠더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뒤엉킨 상황 속에서, 아드난은 한 여성의 죽음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언어와 감각, 사랑과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주인공 마리-로즈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곧 공동체 전체의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 소설은 그녀를 심문하고 처형하는 남성들의 목소리, 침묵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쟁으로 뒤틀린 도시 베이루트의 풍경을 교차시키며, 광기와 공포가 어떻게 일상의 언어가 되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에텔 아드난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적과 아군, 종교와 민족,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를 가로지르며, 인간이 서로를 타자로 만들어가는 구조 자체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특히 “이방인을 향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마리-로즈의 목소리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이자, 오늘날의 세계에도 여전히 강렬한 질문으로 남는다.
아드난의 문장은 시처럼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다성적 구조 속에서, 『시트 마리-로즈』는 전쟁문학이자 정치소설인 동시에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급진적인 사유로 읽힌다. 1977년 프랑스-아랍 우호상(Prix de l’amitié franco-arabe)을 수상했으며, 이후 여성문학과 중동문학, 전쟁문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꾸준히 다시 읽혀왔다.
작가 소개
에텔 아드난은 시인이자 화가, 소설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든 작가이다. 1925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가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베이루트와 파리,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살아갔다. 그녀의 작업은 식민주의와 전쟁, 망명과 언어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아드난은 폭력과 파괴 속에서도 인간의 감각과 풍경, 사랑과 일상의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녀는 회화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풍경을 탐구했고, 글쓰기에서는 가장 작은 감각과 일상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을 발견했다. 『시트 마리-로즈』를 비롯한 그녀의 소설과 산문은 오늘날에도 가장 동시대적인 감각을 지닌 전쟁문학이자 여성 글쓰기로 꾸준히 다시 읽히고 있다. 또한 documenta 13, 휘트니 비엔날레 등 국제 현대미술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재조명되며,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예술가-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책 속에서
p.27
“너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무니르가 말한다. “사막이란 게어떤 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 직접 봐야 해! 하지만 너희, 여자들은 그걸 결코 보지 못할 거야. 정말로 사막을 보려면 길을 찾아 들어가야 하고,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을 줄도 알아야 해. 너희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야.”
맞는 말이다. ‘우리 여자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그 남자들에게 스무분 남짓 추가적인 위신을 보태는, 이 불완전한 컬러 영화의 한 토막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극도로 제한된 세계 안에서, 이 평범한 남자들이 발휘하는 마법은 그렇게 강화된다. 모두가이 게임을 아주 잘 해낸다.
p.39
공포의 힘은 전체주의적이다. 베이루트라는 원형극장 안에서 총성이탁탁 울리고 메아리친다. 그 풍광은 장엄하다. 메아리는 포성을 바다의 넓은 수면 위로 되돌려 보낸다. 천둥은 전쟁의 리드미컬한 소리들과 뒤섞여 베이루트를 정화한다. 이곳은 더 이상 상인들의 도시가 아니라, 우주적 배경 위에 풀려난 살인자들의 도시다.
p.61
이 언덕의 높이에서도 살아남은 몇 마리 파리와 공기만이 늘 가득한교실 안에는 우리, 농아인들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언어들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입모양으로 읽는다. 우리도 소리를내는데, 그 소리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손가락을 마치 알파벳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춤출 수 있다. 라디오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우리는 음악을 알아본다. 진동에 이끌려, 우리는 뱀 주술사의 뱀처럼춤춘다.
p.97
나는 세 아이의 엄마야. 남편과는 헤어졌어. 한 젊은 팔레스타인 남성과 살고 있는데, 그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어. 나는 그를 알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대의를 옹호해 왔어. 나는 그들과 우리 모두의 공통된문화와 공통된 역사를 옹호하는 거야. 내게 그 둘은 다르지 않아. 하지만 내가 괴로움 속에서도 너희가 아니라 그들 편에 섰다면, 그건우리의 생존이 그들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p.133
죽음은 결코 복수형이 아니다. 그 승리를 과장하지 말자. 죽음의 승리는 이미 충분히 절대적이다. 그 승리를 노래하지 말자. 수백만의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죽는 일이 수백만 번 일어날 뿐이다.
p.145
무슨 사랑이요? 1억 명이 넘는 아랍인이 있어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당신들은 자기 자신만 사랑하죠. 누군가에게 애착을 느낄 때조차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만 찾고, 당신들의 열정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아니요, 부나 리아스.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사계절 내내 걸어 건너는 저 골짜기들보다도 훨씬 더 메마른 사막으로 바꿔 놓았어요. 저는 이방인을 향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알아요. 당신들이 서로를 이어 주는 탯줄을 끊어 낼 때 비로소 인간이 될것이고, 당신들 사이의 삶도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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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2일 경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인쇄 일정에 따라 출간이 연기될 수도 있습니다.
베이루트가 무너지던 시간, 한 여성은 끝내 타자의 편에 남았다.
『시트 마리-로즈』는 레바논 내전 중 실제로 납치·살해된 여성 활동가 마리 로즈 불로스 사건을 바탕으로 에텔 아드난이 쓴 대표작이다. 1970년대 레바논의 종교 갈등과 민족주의, 식민주의의 잔재, 계급과 젠더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뒤엉킨 상황 속에서, 아드난은 한 여성의 죽음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언어와 감각, 사랑과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주인공 마리-로즈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곧 공동체 전체의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 소설은 그녀를 심문하고 처형하는 남성들의 목소리, 침묵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쟁으로 뒤틀린 도시 베이루트의 풍경을 교차시키며, 광기와 공포가 어떻게 일상의 언어가 되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에텔 아드난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적과 아군, 종교와 민족,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를 가로지르며, 인간이 서로를 타자로 만들어가는 구조 자체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특히 “이방인을 향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마리-로즈의 목소리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이자, 오늘날의 세계에도 여전히 강렬한 질문으로 남는다.
아드난의 문장은 시처럼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다성적 구조 속에서, 『시트 마리-로즈』는 전쟁문학이자 정치소설인 동시에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급진적인 사유로 읽힌다. 1977년 프랑스-아랍 우호상(Prix de l’amitié franco-arabe)을 수상했으며, 이후 여성문학과 중동문학, 전쟁문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꾸준히 다시 읽혀왔다.
작가 소개
에텔 아드난은 시인이자 화가, 소설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든 작가이다. 1925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가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베이루트와 파리,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살아갔다. 그녀의 작업은 식민주의와 전쟁, 망명과 언어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아드난은 폭력과 파괴 속에서도 인간의 감각과 풍경, 사랑과 일상의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녀는 회화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풍경을 탐구했고, 글쓰기에서는 가장 작은 감각과 일상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을 발견했다. 『시트 마리-로즈』를 비롯한 그녀의 소설과 산문은 오늘날에도 가장 동시대적인 감각을 지닌 전쟁문학이자 여성 글쓰기로 꾸준히 다시 읽히고 있다. 또한 documenta 13, 휘트니 비엔날레 등 국제 현대미술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재조명되며,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예술가-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책 속에서
p.27
“너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무니르가 말한다. “사막이란 게어떤 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 직접 봐야 해! 하지만 너희, 여자들은 그걸 결코 보지 못할 거야. 정말로 사막을 보려면 길을 찾아 들어가야 하고,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을 줄도 알아야 해. 너희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야.”
맞는 말이다. ‘우리 여자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그 남자들에게 스무분 남짓 추가적인 위신을 보태는, 이 불완전한 컬러 영화의 한 토막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극도로 제한된 세계 안에서, 이 평범한 남자들이 발휘하는 마법은 그렇게 강화된다. 모두가이 게임을 아주 잘 해낸다.
p.39
공포의 힘은 전체주의적이다. 베이루트라는 원형극장 안에서 총성이탁탁 울리고 메아리친다. 그 풍광은 장엄하다. 메아리는 포성을 바다의 넓은 수면 위로 되돌려 보낸다. 천둥은 전쟁의 리드미컬한 소리들과 뒤섞여 베이루트를 정화한다. 이곳은 더 이상 상인들의 도시가 아니라, 우주적 배경 위에 풀려난 살인자들의 도시다.
p.61
이 언덕의 높이에서도 살아남은 몇 마리 파리와 공기만이 늘 가득한교실 안에는 우리, 농아인들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언어들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입모양으로 읽는다. 우리도 소리를내는데, 그 소리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손가락을 마치 알파벳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춤출 수 있다. 라디오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우리는 음악을 알아본다. 진동에 이끌려, 우리는 뱀 주술사의 뱀처럼춤춘다.
p.97
나는 세 아이의 엄마야. 남편과는 헤어졌어. 한 젊은 팔레스타인 남성과 살고 있는데, 그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어. 나는 그를 알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대의를 옹호해 왔어. 나는 그들과 우리 모두의 공통된문화와 공통된 역사를 옹호하는 거야. 내게 그 둘은 다르지 않아. 하지만 내가 괴로움 속에서도 너희가 아니라 그들 편에 섰다면, 그건우리의 생존이 그들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p.133
죽음은 결코 복수형이 아니다. 그 승리를 과장하지 말자. 죽음의 승리는 이미 충분히 절대적이다. 그 승리를 노래하지 말자. 수백만의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죽는 일이 수백만 번 일어날 뿐이다.
p.145
무슨 사랑이요? 1억 명이 넘는 아랍인이 있어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당신들은 자기 자신만 사랑하죠. 누군가에게 애착을 느낄 때조차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만 찾고, 당신들의 열정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아니요, 부나 리아스.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사계절 내내 걸어 건너는 저 골짜기들보다도 훨씬 더 메마른 사막으로 바꿔 놓았어요. 저는 이방인을 향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알아요. 당신들이 서로를 이어 주는 탯줄을 끊어 낼 때 비로소 인간이 될것이고, 당신들 사이의 삶도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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